김진 울산대 교수의 역작 <페미니즘 윤리학>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권은숙 온갖문제연구실 연구노동자
 

▲ 페미니즘 윤리학 김진 지음. UUP출판 펴냄.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한 종이기 때문이 여성을 지배할 권리를 갖는다”고 했다. 칸트는 여성이 남성처럼 ‘깊이’생각하지 않고 ‘아름답게’생각하기 때문에, ‘필요하지만 건조하고 추상적인 사유나 인식’에 종사할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쇼펜하우어는 “여성들은 멍청하고, 머리가 비었고, 비합리적이고, 수다스럽고, 신경질적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남성이 이끌어 주지 않으면 동물처럼 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의 원죄설에 따르면 여성은 순수하지 못하고 우주의 질서를 따르려 하지 않는 방자한 존재이며, 육감적인 유혹으로 남자를 몰락시킨다. 따라서 남성의 정신은 여성 때문에 실추되고 더러워진다며 죄의 근원을 모두 여성들에게 돌리고 있다. 이런 생각이 예로부터 지배적이었다.

발달심리학의 대표자들인 장 피아제와 로렌스 콜버그는 20년 동안 84명의 남아들을 대상으로 도덕발달의 과정을 추적했다. 인습이전 단계로 1)처벌과 복종의 단계 2)개인적 도구적 목적과 교환의 단계, 인습적 단계로 3)상호간 기대관계와 공조의 단계 4)사회체제와 양심유지의 단계, 인습이후 단계로 5)선차적 권리와 사회계약 또는 공리성의 단계 6)보편적 윤리 원리의 단계로 구분한다. 모든 사람들이 낮은 1단계에서 높은 6단계로 이행하는데, 도덕발달이 가장 미숙한 집단은 여성들로 대개 3단계, 즉 상호간 기대관계와 공조의 단계에 머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심리학자 캐럴 길리건(Carol Gilligan)은 여성의 도덕성 지각발달이 남성과는 다른 도덕지각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이 상호간 기대관계와 공조에 민감한 것은 여성의 행동반경이 가정살림과 양육에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여성은 남을 돕고 배려하는 것을 최선의 도덕적인 덕목으로 알도록 길러져 왔기 때문이다.

칸트에서 롤즈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 철학자들은 도덕감의 최고단계를 보편적인 도덕원리에 따르는 정의감으로 본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에 정의감에 비견되는 배려의 관점이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인 윤리인 공리주의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목표로 삼는 것과 달리 페미니즘 윤리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궁극의 이상으로 삼는다. 불이익을 당하는 소수에게 무관심한 공리주의 대신 페미니즘 윤리는 배려와 보살핌에 주목하는 것이다.

남성은 관계, 여성은 개별화에 어려움

정의의 윤리가 모든 사람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평등의 전제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보살핌의 윤리는 어떤 사람도 해를 입어서는 안된다는 비폭력을 바탕으로 한다. 또한 정의판단은 그 속에 내재된 자기중심주의 때문에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자신의 관점을 객관적인 진리라고 우기거나 타인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배려판단은 자신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지 못해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여성은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기 어려워 타인의 관점에서 자신에 대한 평가를 내리려는 경향이 있다.

남성은 관계에 어려움을 갖고 여성은 자신을 개별화 하는 것이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도덕적 관점에 맞추어 보는 일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상호 인간관계가 자율과 독립에 방해가 된다고 하는 (남성적)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율에 대한 열망이 고립과 난폭함을 낳는다는 (여성적인) 선입견을 정리하기 위해서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관심을 갖게 되는 대상이 달라진다. 이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도 다른 관점을 갖고 보면 갑자기 보인다. 그래서 성의 차이를 보는 것은 여성을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성과 그들의 능력을 다른 시선으로 이해함으로써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갖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수 천 년 동안 인류의 절반(여성)이 진리의 원천으로부터 제외되어 왔고, 남성 중심적 동기가 지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성의 차별이라는 측면에서 파악되지 못했다. 남근에 내재된 잠재력이 우수하다는 환상에 정초한 인지유형은 남성을 완벽하고 특별한 인간 존재로 전제하고 있다. 젠더 관점으로부터 성의 차이를 본다면 처음부터 잘못된 가정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참된 진리조건은 남성적 자기이해뿐 아니라 여성적인 것도 포괄하며 수용하려는 태도일 때 비로소 가능해 진다.

이 책은 칸트를 통해 도덕의 정초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고, 콜버그의 실험을 통해 도덕의식은 진화하는가 묻는다. 페미니즘 윤리학의 보편성 논쟁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불교의 자비윤리가 페미니즘 윤리의 정초 근거가 될 수 있는가 등이 궁금하시다면 수고스럽게 책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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