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형의 치욕을 견디고 완성한 사마천의 <사기>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이은자 前 공무원

그대는 사랑의 記憶도 없을 것이다
긴 낮 긴 밤을
멀미같이 時間을 앓았을 것이다

天刑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
肉體를 去勢당하고
人生을 去勢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그대는 眞實을 기록하려 했는가
- 박경리의 <司馬遷>-

▲ 사기 사마천 지음·김진연 편역. 서해문집 펴냄.

누군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사마천의 <사기>를 집어 든다고 했다.<사기>는 BC 90년경에 고대 중국의 황제로부터 한나라 무제에 이르는 3,000여 년의 역사를 저술한 사마천의 명저이다. 이 책 130권은 본기 12권, 표 10권, 서 8권, 세가 30권, 열전 70권의 5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연대를 따라 평면적으로 기록하는 편년체가 아니라, 역사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부각하는 기전체로 썼다.

사마천은 아버지의 관직을 이어 받아 문서를 정리하고 기록을 담당하는 관직인 태사령이었다.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병환으로 사망하며 사마천에게 자신이 저술하던 역사서의 편찬을 완료해 달라고 유언했다. 당시 사마천의 나이는 36세였다. 기원전 99년 사마천은 흉노에 항복한 ‘이릉’이라는 장군을 비호하다가 한의 효무제에게 태사령 직책을 파면당하고 사형 선고를 받게 됐다. 그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죽음보다 더 치욕스러운 생식기를 자르는 궁형(宮刑)을 받고 살아남아 55세에 평생의 역작 <사기>를 완성했다.

<사기>는 단순히 역사의 기록물이 아니며 위로는 황제로부터 아래로는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사가 중국의 광활한 대지 위에 종횡무진 펼쳐진 대서사시이며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사람은 어떻게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가?"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경전과도 같은 인생의 지침서이며, 찬란한 문학의 보고서이다.

각양각색의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여 그들이 겪었던 뛰어난 지략과 비범함에 대하여 저술한 <사기>는 황제를 비롯한 최대의 권력자로부터 시정잡배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어떻게 성공하고 명멸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날로 복잡다양해지는 국제 정세와 위기 속에서 우리의 국방, 외교, 정치, 경제 등 현대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정한 사내, 만인의 연인 사마천

오늘날 중국이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거느리고 세계 속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처럼 그 저변에는 광활한 영토 속에서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숱한 인걸들이 성공하고 몰락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전략과 대처능력, 기지, 외교력, 인재등용 등의 사건을 꼼꼼히 축적하여 반면교사로 삼은 사마천 같은 역사학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역사는 시간의 흐름을 증언하는 증인이며, 진실의 빛이며, 인생의 선생님이고, 과거의 소식이다” 라고 로마의 위대한 웅변가 키케로는 역사의 본질을 명쾌하게 정의했다. 역사를 집필한다는 것은 오직 기록과 고증에 의해 진실만을 적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뒤따르는 어렵고, 두렵고, 힘들고 고된 작업이다. 종이가 발명되지 않았던 시절 죽간과 목간에 52만 6,500자의 한문을 칼로 일일이 새겨 기록해야 했던 그 공들인 수고와 오랜 세월의 지난한 작업의 진척과 학문적인 경지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서 <사기>는 감히 변기위에 걸터앉아, 배 깔고 엎드려 편안하게 읽을 수 없다. 광활한 중국의 영토와 수많은 인물, 역사적 사건들의 전개와 흥망성쇠를 좁은 방에서 편히 앉아 시공간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 일인가?

나는 몇몇 친지의 부모에게 이 책을 자녀의 입학선물 등으로 건네주기도 했는데 반드시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꼭 부모가 먼저 선독 할 것. 그 책을 읽고 난 아이의 눈은 기지와 총명과 덕으로 빛날 것이며, 웅대한 야망으로 가슴이 넓어지고, 재미와 지혜와 교훈을 익혀 매사를 슬기롭고 현명하게 처리할 줄 아는 혜안이 열릴 것임을 믿는다.

나 또한 그 책을 읽고 나서 문득 거울이 보고 싶어졌다. 어쩐지 전에 비해 내 모습이 달라졌기를 바라며. 사마천. 당신은 비록 궁형으로 남성의 상징을 잃었지만 천년을 두고 여인들로 하여금 연모하게 하는 진정한 사내, 영원한 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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